고통의 2주
이사를 한 목요일,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바 선생'이었다. 선생은 나에게 훈육을 하기 위해서 친히 방문을 했고 교장, 교감, 담임, 부담임(편의상 A,B,C,D)까지 총 4명의 선생이 혼쭐을 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방의 위치는 1층이지만 계단을 한층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 해충과 습기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안심했었다. 그리고 무방비인 상태에서 그들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으로 인해 지금까지 여파가 남아있다.
그때의 심정은 마치 학원을 째고 피시방을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굳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을 때와 같았다. 급격한 심경 변화와 스트레스,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다만 한 가지 다른 건 이번에 내가 잘못한 건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이사하기 전 몇번이나 왔다 갔을 때만 해도 없었다.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덧없다.
바 선생, 그들은 5평 남짓한 곳의 각기 다른 세 장소에서 나를 놀래켰다.
1. 구석진 벽
전에 살던 사람의 부주의인지 모르겠지만 도배하기 전의 벽은 아비규환이었다. 정체 모를 얼룩들과 누렇게 변한 벽지. 아무리 전세라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거 같아 흰 벽으로 도배했다. (내 돈으로)
첫번째 바 선생 A(교장)는 바로 여기 있었다. 창문 옆 하얀 벽지 위에 그는 자신 앞의 생을 모른 채 가만히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믿기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 저 벽에 있는 생물이 그게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성보다 빠르게 몸은 움직였다. 저것을 살려둬선 안됐다. 당장 이번주 일요일에 자고,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그것을 한시라도 빨리 없애야 했다. 각티슈를 벅벅 뽑아 살금살금 다가가서 휴지로 감싸서 죽였다(벽에 묻으면 안되니까). 늙은 교장 선생이라 쉽게 제압했다. 화장실로 가 변기에 내렸다. 이제 끝났겠지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왔다.
2. 싱크대
다시 거실로 와서 싱크대로 눈을 돌리는데 방금 잡은 선생만큼 큰 것이 둘이나 눈에 들어왔다. 목구멍까지 욕짓거리가 차올랐지만 함께 방을 구경하러 온 분이 놀랄까봐 침착하게 행동했다. 책상에 둔 각티슈를 벅벅 뽑아 바 선생 B(교감)을 처치했다. 하지만 내 각티슈 뽑는 속도보다 바 선생 C(담임)의 발이 빨라 나머지 한마리는 잡지 못했다.
3. 화장실
휴지를 변기에 버리고 뒤돌아선 순간 놀라서 화장실 미끄러질 뻔 했다. 화장실 문 옆, 그러니까 눈 앞에 그 날의 마지막 바 선생 D(부담임)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라서 소리도 못 질렀다. 화장실에 있는 휴지로 바로 죽였다. 분노에 차올라서 휴지로 감싸고 꾹 눌러 뭉게버렸다. 같이 온 사람에게 너무 미안했다. 고작 이런 걸 보여주려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자취는 첫날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여기서 잘 수 없을거 같아 본가로 돌아가 잠을 잤다. 다음날 바퀴벌레 퇴치 용품 두개를 주문했다. 하나는 짜서 쓰는 겔타입과 먹이캡 + 뿌리는 스프레이타입.
전자는 트랩, 후자는 즉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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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겔 시그마겔 슈퍼3" - (겔,먹이캡)
"페스트세븐가드" - (스프레이)
다행히 자취방으로 가기 전에 배송이 됐고 비장한 마음으로 자취방으로 갔다. 싱크대, 화장실, 벽지, 에어컨, 냉장고 뒤 등 겔과 먹이캡을 놓았다. 그리고 싱크대 하부장에 집중적으로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러자 10분도 안돼 여기저기 숨어있던 놈들이 튀어 나왔다. 이때는 스프레이가 효과가 있었다. 나온 놈들에게 뿌리니까 즉사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작은놈, 큰놈 합쳐서 5마리 넘게 잡았던 거 같다.
야속하게 밤이 찾아왔다. 자다 깨서 불을 켜고 확인하는 걸 수십 번을 했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2시간 남짓 잠을 자고 출근했다.
+ 후기 1 : 세스코 상담 결과 5평 원룸 주제에 6개월에 40만원이었다. 비용 문제로 부를 수가 없었다. 대신 방 곳곳을 약으로 도배했다. 그리고 3~4일 정도 매일 퇴근 후 시체를 수습했다. 냉장고 밑, 싱크대 하부장이 그들의 서식지였던거 같다. 시체를 치울 때마다 진심으로 계약 취소하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떵떵거리며 나왔는데 갈 수 없었다. 집주인에게 말해봐도 나몰라라 할뿐이었다. 다행히 마지막 출몰일인 11월 14일부터 3주가 지난 지금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때의 PTSD가 아직 남아서 틈만 나면 벽과 싱크대를 체크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 후기 2 : 3달 뒤에 약을 재도포하라는 설명이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 12월 중순 즈음에 실시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눈에 보이지만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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